[장공 33주기 추모예배 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마가 1:16-20)
육순종 목사(총회장)
저는 교단의 총회장이고, 교단의 중진이지만, 장공을 어깨너머로 아는 세대입니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지난 것입니다. 장공의 1세대 제자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2세대 제자들도 80대에 접어드시고 교단의 최고 원로가 되셨습니다. 아마도 저 같은 사람은 3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장공께서 카나다에서 돌아오신 후, 학교 채플에서 가끔 뵐 수 있었고, 돌아가시던 87년 저는 30대에 들어섰고, 그 다음 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돌아가시던 해의 장례식의 무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장공의 학문과 인격의 직접적인 영향아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깨너머’란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어깨 너머’로 장공을 배웠다는 말은 장공에게서 영향을 받은 스승과 선배들에게 장공을 배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입니다. 장공에게 직접 배우고, 그 인격의 영향을 받으신 분들의 그리움과 존경과 재해석을 통해 장공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장공을 여러 가지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만, ‘어깨 너머’로 본 저로서는, 장공이야말로 예수의 제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만난 이후 평범한 어부였던 그들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장공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공이 이룬 업적보다, 장공이 키운 인물들, 장공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장공은 사람을 낚는 어부였던 것입니다. 실제 이런 그의 관심을 말해주듯, 오늘 본문은 장공이 용정 은진중학교 교유(교목 및 교사)로 부임할 때 했던 첫 설교 본문이기도 합니다.
장공 품에서 자란 일 세대들을 열거하다 보면 마치 별들의 전쟁을 보는 듯합니다. 강원용, 안병무, 정대위, 김정준, 문익환, 문동환, 서남동, 박형규, 조향록, 이상철, 전경연, 박봉랑 등, 가히 별들의 전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 하늘의 별들이 되셨네요. 장공 2세대도, 이 자리에도 계시지만, 한국사회와 한국 교계에 영향력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장공의 후예들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서 가진 영향력은 실로 컸습니다. 그래서 일반 언론에서도 ‘한신그룹’이란 표현을 쓸 정도의 인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장공의 품은 크고도 넓었습니다.
한번은 합동측의 제법 유명한 목사의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그는 박형룡 교수와 장공을 비교하면서, “학문적 업적으로만 보면 박형룡의 업적이 한 수 위인데(아전인수격 해석이지요) 장공은 그에 비해 인물을 많이 키웠다. 그래서 그의 사회적 영향력을 훨씬 컸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인물을 키워야 한다.”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장공이란 정신적 토양은 인물을 자라게 하는 텃밭과도 같았습니다.
장공은 일찍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교육자의 길로 생각한 듯 합니다. 20대 초, 서울 YMCA 영어 전수과를 수학하고, 승동교회에서 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듣고 위로부터의 영을 경험하고 회심한 후, 장공이 처음으로 간 곳은 함경북도 경흥의 산골마을 학교인 용현소학교, 귀낙동소학교, 산야산소학교였습니다. 일본 청산학원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웨스턴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간 곳도 평양숭인상업학교와 간도 용정의 은진중학교였습니다. 그 이후 조선신학원과 한국신학대학으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일본 청산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장공의 언급을 보면 그 마음 깊은 곳에 일고 있던 열정은 근본적으로 교육의 열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범용기에서 장공은 청산학원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평생 사업(life work)이란 것도 나는 모른다. 신학에 들어온 것도 어쩔 수 없이 몰려서 그렇게 된 것이고 목사할 생각은 없었다. 일제하 조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냐? 그래도 교육밖에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게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후진들에게 뭔가 ‘혼’을 넣어 줄 접촉점이 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사상과 신앙을 주축으로 한 유치원부터 소, 중, 고, 대학까지의 교육 왕국을 세워 보리라고 맘먹었다.”
장공이 젊은 날, 일본 청산학원 신학부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아닌 교육자로서의 열정이 강했던 이유는 아마 장공이 향동소학교에 다닐 때 자신을 가르쳤던 교사 김희영- 이질 조카이기도 했던- 의 영향이었다고 짐작됩니다. 범용기에 보면, 하루는 김희영 선생이 삼사 학년 아이들을 모아 놓고 통렬한 애국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일본인들이 민비를 살해하고 궁궐 안을 마구 짓밟은 것, 이등박문이 나라를 농락하여 합방까지 강행한 것, 개화의 선봉들이 장렬했다는 것, 이준 선생이 할복하신 일 등등을 이야기하고 난 후 “사천 년 역사와 이천만 민족이 이런 굴욕을 당해야 하느냐? 지금도 애국지사들이 해외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제발 여러분은 정신을 똑바로 가지고 대를 이어 싸우라”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통곡했습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엉엉 울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은 어린 장공에게 깊이 심어진 교육자의 길에 대한 염원의 시초였다고 생각합니다. 장공이 아버지의 서당교육을 떠나 최초의 정식교육이라 할 수 있는 향동소학교에 편입하였을 무렵인 1910년은 조선은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를 받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이 때 만난, 민족정신과 교사로서의 책임감 또한 남달랐던 김희영의 모습은 어린 김재준에게 깊은 도전과 영감을 준 것 같습니다. 장공이 서울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시골 소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서 활동한 것 또한 김희영으로부터 받았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내면의 열정을 가진 장공은 사람을 기르는 스타일은 특별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람을 강하게 이끄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소리 없이 사람을 이끄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소리 없음의 특징은 사람을 깊이 보는 안목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눈을 연상케 합니다. 목수였던 예수는 사람을 보는 독특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수는 나무를 볼 때, 그 원목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보는 사람입니다. 투박한 원목에서 의자를 보고, 탁자를 보고, 지팡이를 봅니다. 쓸모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천방지축 시몬에게서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베드로를 보신 것이고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진 요한에게서 깊은 통찰력을 가진 영적지성을 보신 것입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얼마나 사람을 깊이 주목하는 분인지 몇 가지를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시는 분 몇 분만 언급합니다. 장공은 성북교회 2대 목사님이셨던 박봉랑 목사님이 이제 갓 30이던 1949년, 박 목사님을 조선신학교 교수 끝자리에 앉히셨습니다. 당시 박 목사님이 공부하시던 방이 동자동 김 목사님 사택 창문을 통해서 들여다보이는 곳에 위치했다 합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혼자서 옷을 벗어 제치고 열심히 주경야독 하시던 박 목사님을 눈여겨보시고, ‘아, 저 젊은이가 무엇인가 되어도 되겠구나.’ 생각하셨답니다. 그리고 그에게 위대한 신학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후일 박 목사님은 말없이 뒤에서 지켜보아 주시는 스승의 사랑에 감동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오늘 점심을 내 주시는 조원길 목사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조 목사님은 고등공민학교 다닐 적, 장공의 글을 보고 감동을 받고 피난 시절 부산 남부민동 신학교를 무작정 찾아, 정식졸업장이 없어도 입학이 가능한 선과라도 들어가서 배우게 해 달라고 간청했고, 장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겨우겨우 야간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었지만, 막상 신학교 필기시험을 거의 쓰지 못하셨답니다. 구두시험 때, 자신이 고등학교 때 찾아온 학생이라 설명하고, 졸업하라고 오라해서 왔다고 호소하여 겨우 합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군 제대 후 복학할 등록금이 없어서 낙향을 준비한다는 조 목사님의 편지를 받으신 장공은 당시 카나다에 외유 중이셨는데 학교로 편지를 보내 그 달 급료로 조 목사님 등록금을 대납하도록 하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은혜죠. 저는 장공이 청년 조원길 속에 있던 배우려는 열정, 목양의 열정을 주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이 자리 계셔서 그렇지만, 이사장님 이야기입니다. 김상근 목사님 학생 당시, 장공께서 학장이셨던 것 같습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4.19전 학내가 무척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학교가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그 중심에 김 목사님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학우 김경재 목사님이 붙드시고, 당시 학생과장 박봉랑 목사님이 설득하셔서 학장실로 함께 사과하러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학장실에 들어온 김 목사님에게 장공은 “김군, 너는 여기 왜 왔어.” “저는 별로 잘못 한 것이 없는데 박 목사님이 하도 가서 사과드리라 그러셔서 왔습니다.” “젊은 놈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가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하러 와? 잘못한 것 없으면 나가서 해.” 저는 이 에피소드를 들으며, 그때 장공의 눈은 젊은 김상근의 올곧은 지사적인 기질을 깊이 주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임 이사장 숨밭 김경재 목사님은 이런 장공의 모습을 도토리 속에서 상수리나무를 보는 교육자로 표현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장공에 대한 적확한 표현입니다. 저는 장공 목사님의 사진들을 보며, 목사님의 눈매를 주목합니다. 그가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였고, 예언자의 가슴을 가진 분이셨지만, 역사와 사람을 깊이 보는 눈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물난에 봉착한 우리 교단의 현실이 오버랩되며 장공의 그 눈, 그 안목이 그리워집니다. 장공은 자신의 10가지 좌우명 4번째에서 “버린 물건, 버려진 사람에게서 쓸모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인물부재의 우리의 현실은 인물이 없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장공의 눈, 장공의 안목이 없는 것의 문제인 것입니다.
교단장이 되고서 교단 전체를 아우르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인물이 없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점처럼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선이 아니고 점으로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뛰어나고, 똑똑한 인재들이 많지만, 우린 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점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점을 이어 선을 만들자.’는 제 안의 외침이 있습니다. 선후배의 선을 잇고, 동료들 사이의 선을 잇고, 총회와 노회, 지교회와 선을 잇고, 교회와 사회의 선을 잇자는 생각입니다.
장공은 점으로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선을 이어가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선을 남기고, 기장의 역사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새로운 기독교, 역사참여의 기독교, 열린 기독교의 역사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것은 점이 아니라 선이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제, 그 역사, 그 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으로 흩어진 우리의 현실을 장공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우리 안의 가능성을 보고자 합니다. 선을 이어가는 역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미국의 작가 윌리암 아서는 “평범한 교사는 잔소리를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고, 우수한 교사는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공은 우리의 위대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영감으로 우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의 영감이 그가 남긴 기록 속에 있고, 그가 남긴 교회 속에 있고, 그가 남긴 사람들,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장공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의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제자, 장공의 제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다짐과 기도가 우리 안에 깊게 자리 잡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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